프랑스에 가기 전 프랑스 사람들은 모국어를 매우 사랑하여 외국인이 영어로 질문해도 전혀 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그런데 내가 가서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그것은 ‘잘못된 신화’였고 ‘국제적 헛소문’이었다. 그들은 그냥 영어를 못 알아듣기 때문에 답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프랑스인들의 모국어 사랑은 유별나서 1634년 프랑스어 표준화 작업을 위한 아카데미 프랑세즈 설립, 프랑스어 보급을 위해 1883년 알리앙스 프랑세즈 재단을 설립하여 전 세계에 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1992년 수정된 프랑스 헌법 제2조에 “공화국의 언어는 프랑스어”라는 선언에 뒤이어 1994년 프랑스어 사용 관련법(일명, 투봉법 1994) 제 1조에서는 프랑스어가 교육, 노동, 교환, 공공 업무의 언어임을 밝히고 있다. 이 법에서는 1539년 빌레르 꼬트레 칙령을 통해 사법, 행정 관련 업무에 프랑스어를 사용하도록 결정한 것보다 더 강력하게 학술활동 등 특수 영역에서도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외국어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또, 2006년 5월 17일 프랑스 하원을 통과한 외국인 이민동화법에서는 선택적 이민 허용과 외국이민노동자의 프랑스 사회로의 성공적인 동화를 내세우면서 영주권과 국적 취득시 프랑스 공민교육 및 언어교육 이수증 제출을 의무화 하고 있다.
외국인을 위한 프랑스어 교육
프랑스 인구센서스(2008.1.1 기준)에 의하면, 전체 인구 6,375만명의 6% 정도가 외국인이고 파리 거주 외국인은 전체 파리 인구의 1/7 수준인 30만명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과 20만에서 40만으로 추정되는 불법체류자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훨씬 웃돌 것이다.
2005년 아랍계 청소년의 죽음으로 촉발된 프랑스 폭동은 그 근원이 프랑스의 이민정책에 있다. 1945년 법에 의해 설립된 이민국사무소(ONI)에서 외국인들의 프랑스 국적 취득을 허용하였다.
2차 대전 이후, 프랑스는 전후 복구 사업과 공장 노동자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식민지였던 알제리,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출신 노동 인력 및 그들의 가족의 이주까지 받아 들였다.
그러나 ‘느슨한 통합주의’를 내세운 프랑스는 이민 2세대의 교육에 적극적이지 않아 실제 흑인들의 집단 거주지 소재 공립학교에서는 유급되는 학생의 비율도 높을 뿐 아니라, 프랑스어를 읽고 쓰는 비율도 현저히 떨어진다1). 또 프랑스 감옥 5만 5천명 죄수 중 1만 2천명이 이민 외국인이며 청소년 범죄자의 67%가 아랍계, 17%가 아프리카계로 보고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에서도 각급 학교 교육과 평생교육기관 등을 통해 외국인의 프랑스 사회 정착을 위한 1단계로써 언어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외국인에게 프랑스어 교습을 할 수 있는 교사 양성을 위해 “외국어로서 프랑스어”가 1983년 1월 25일 교육부 장관령에 의해서 대학 정규 학과로 설치되었고, 오늘날 36개 대학에 개설되어 외국인 대상 프랑스어 교습을 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해 내고 있다. 또 외국어로서 프랑스어 교재 편찬을 위한 출판사 CLE에서 각종 교재 편찬을 담당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외국학생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으로는 CRI(cours de rattrapage)와 CLIN(classes d'initiation dans le primaire), 중등학교에서는 CLA(class d'accuil dans le secondaire) 등이 있다.
CRI는 부족한 과목을 공부하는 과정으로 주당 추가로 몇 시간의 수업을 듣는 것이고 CLIN은 불어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모아 일반 학습에 특별 불어 과정을 강화시킨 반으로 아동의 불어 실력에 따라 3개월, 6개월, 9개월의 코스로 편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외국 학생이 과학 수업을 듣고 이해할 수 없다고 교사가 판단하면 운영되는 특별반에 보내 그 시간에 불어를 배우도록 하고 일반학급에서 수업이 가능한 교과의 경우 다시 본인 학급으로 복귀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파리시의 경우 20개 구별로 한 두 학교에 특별 불어 적응반을 두고 외국인이 희망할 경우 배정한다.
대학의 경우 외국학생들에게도 프랑스 학생들과 동일한 혜택을 등록금, 교통비, 학교 식당 쿠폰, 주택보조금 등에서 누릴 수 있고 유학생들을 위한 언어 강좌가 대학 언어 연구소에 개설되어 있다. 외국인들이 프랑스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DELF(일반불어능력시험)와 DALF(고급불어능력시험)를 치루어야 한다.
1985년 처음 실시되기 시작한 DELF는 실제 생활에서 의사소통능력 및 언어 지식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DALF는 문화, 직업 등과 관련된 보다 심화되고 전문적인 능력을 측정한다. 이 시험들은 외국인들이 갖추고 있는 불어 지식이나 구사력의 수준을 프랑스 교육부에서 인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어 습득에 어려움을 갖는 집단은 성인들로 그 중에서도 기초 학력과 소득 수준이 낮은 외국인들이다. 영어를 잘 하는 외국인의 경우 프랑스어 배우기가 수월하고 또 인터넷 상의 유용한 정보를 통해 값싸고 질 좋은 무료 프랑스어 강좌를 찾아내 이용할 수 있다.
한편, 소득수준이 높은 외국인은 오랜 전통과 학위가 인정되는 교육부 인증 기관2)인 알리앙스 프랑세즈나 캐톨릭 어학원, 소르본 어학원3) 등에 등록하여 프랑스어를 배울 수 있다. 소르본 대학 부설 어학원은 파리 4대학 산하 기관으로 외국인을 위한 프랑스어 교습기관으로는 프랑스내 최대 규모로 1917년 “프랑스어 언어와 문화 강좌”라는 이름으로 문법, 실습, 음성학 등의 강좌를 1년제, 학기제, 여름 방학 등으로 구분하여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정착 지원의 일환으로 프랑스 지방자치단체별로 결혼이민자, 외국인 여성 등을 위한 프랑스어 교육, 프랑스 문화 이해 등 다양한 강좌가 운영되고 있다. 파리시의 경우 다문화 포용정책의 일환으로 부시장 주도하에 외국인 대상 프랑스어 학습강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먼저 외국인이 프랑스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학습 전용 책자 발간 및 언어강좌 실시, 파리시 비유럽권 외국인 정착 담당 부시장이 프랑스 언어 강좌 책자 발간을 책임지며, 외국인 지원 및 서비스 책임자 136명에게 외국인이 프랑스어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08년 전반기에는 외국인 노동자 1천명을 상대로 프랑스 언어 경연대회4)를 개최하고 가을부터 1만 5천여 명의 노동자에게 무료강좌 혜택을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5).
프랑스 문화 습득 과정으로서 프랑스어 배우기
프랑스어 교육의 특징은 한마디로 “어학, 문학, 문화와 예술의 총체로서 프랑스어 배우기”로 정리할 수 있다. 언어는 한 국가의 혼이며 한 국가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그 내용이다.
프랑스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문학의 대가들, 철학자 알베르트 까뮈와 사무엘 베케트를 만나고 영화 “남과여”를 보고,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마네와 모네와 르노와르의 그림을 관람하면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다. 실제 내가 등록해서 불어를 배운 에꼴 프랑스 랑그의 경우 문법과 회화 수업, 프랑스 문학, 프랑스 미술사, 영화사 등이 정규 교육과정으로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수가 비공식적으로 100만에 육박하는 지금, 우리는 체계적으로 한국을 알리고 한글을 가르치기 위한 “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육” 정책 입안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또 결혼 이민자 가정 자녀들이 학교에서 낙오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도록 도와주는 정책이 실시되고 있는지 살펴볼 때이다.
